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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MIC 그는 어디에나 있다 : "귀귀"작가 인터뷰
 글쓴이 : 재담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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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acomics.co.kr/archives/21130#.VFLPlVI1a2e [1747]

SPECIAL. 그맛, 병맛 #02 그는 어디에나 있다 : 귀귀 인터뷰

 
 
 
귀귀 작가의 오너캐
귀귀 작가의 오너캐
 
 
누구나 그의 이름은 알지만, 모두가 그의 작품을 보지는 않는다.
특유의 그림체가 일단 1차 필터링으로 존재하고 그 충격적인 설정과 내용에서 다시 호와 불호가 명확히 갈린다.
그러나 인터넷 세상에서는, 설령 보지 않는다 해도 완벽하게 그의 작품이 미치는 자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뉴스 댓글 란에서 만화를 캡쳐한 짤방이 보이고, 각종 유머게시판은 그의 이야기로 넘쳐나며
‘약빤’ 혹은 ‘미친’등의 키워드로 검색하면 고집스럽게 검색결과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우리는 마치 빅브라더가 아닌, 그를 피할 수 없는 세상을 사는 주민들 같다.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의 작품을 만끽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이름은 귀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므로 메일을 주고받았다.
 
*귀귀 작가의 강력한 요청으로 답변은 오탈자 외 정리 없이 원문 그대로 게재합니다.
 
 
free suck
 
 
 
작품은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이름과 나이 외에 밝혀진 바가 없다.
 
신상 노출을 안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고요, 굳이 밝힐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SNS도 어떤 신념이 있어서 하지 않겠다, 라기 보다는 그냥 하지 않고 있을 뿐,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누리꾼들이 알음알음으로 정보를 찾아서 공유하더라. 사실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다들 나름대로 근거는 갖고 있다. 학교와 전직, 데뷔의 계기 등등. 딱히 꺼리지 않는다면
지금 본인의 입으로 정리를 해 보는 건 어떻겠는가.
 
(주의 :  허세 컨셉입니다)
 
네.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어서 남들과는 차이 나게 잘한다 할 수 있는 일이 만들기와 그림 등의 미술이었습니다.
좋아하기 보다는 잘하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고2때 입시미술을 배우게 되었고
기초 뎃생인 ‘구’ 를 그리는 걸 보고 원장선생님이 즉석에서 아그리빠 라는 석고상을 그리게 했습니다.
나중에야 연필을 쥔 손을 뻗어 이리저리 각도를 재고 종이 크기에 맞춰서 그려야한다는 것을 배웠지만
그걸 몰랐던 저는 보이는 대로 그렸습니다. 그림이 완성되어 갈 때쯤 뎃생 실에 들어온 원장선생님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선생님들을 불러오기 시작했고 어느덧 제 뒤로 모여든 선생님들은
제 그림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어디서 배웠냐며 추궁하듯 묻는 선생님도 계셨고 뒤늦게 와서 본
선생님은 원장 선생님이 그리신 거 아니냐 물었습니다. 학원에 있던 여학생들은 불공평한 신을 원망하며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담담했습니다. 그 이유는 항상 있어왔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중학생 시절 전교미술대전에서 그린 풍경화가 대상을 수상했을 때 저는 1학년이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전교가 뒤집어졌고 한 무리의 선배들은 누가 그려준 거 아니냐며 을러댔으며
다른 무리의 선배들은 미술은 너의 것이구나, 라고 하며 미술의 길을 포기했습니다.
일찌감치 중학교 때 그린 연습장 만화를 친구들에게 팔아 용돈벌이를 하였고 고1 국어수업시간에
몰래 공책에 추리소설을 쓰다가 선생님께 들켜 압수를 당했지만 며칠 후 그 선생님께서
절 교무실로 부르시더니 넌 글을 써야한다면서 똑똑한 아이들만 나갈 수 있다는 백일장에
나가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제 성적은 바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는 소설가의 뜻이 없었기에 한사코 절 붙잡는 선생님의 손을 뿌리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학업에 소홀한 탓에 내신성적은 바닥이었습니다.
이문열 삼국지를30번 정독한 덕인지 간신히 언어영역 점수는 확보하게 되었지만 대학에 합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점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점수 100점 차이를 엄청난 뎃생 실력과
실기 실력으로 커버하며 당당히 두어 군데의 미술 대학교에 합격하게 되었고
그 중 국립대학으로 입학하였습니다.
 
 
디시 인사이드에서 데뷔했다는 설도, 친구의 데뷔작에 축전만화를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데뷔를 했다는 설도 있다. 그건 ‘데뷔’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의 차이일 텐데.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온 후 대학 복학시절, 지인의 추천으로 디시인사이드 카툰 갤러리에
몇 차례 개그만화를 올렸습니다. 큰 호응을 얻었으나 그 당시 IP주소의 존재를 몰랐던 저는 댓글 조작으로 인해
 큰 망신을 당했고 많은 디시인사이드 네티즌들이 이것 또한 개그일거라 감싸주었지만
저는 더 이상 만화를 올릴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제 첫 번째 웹툰 연재였습니다.
 
 
 
 
첫 정식 연재작 『정열맨』
첫 정식 연재작 『정열맨』
 
 
그러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친구 만화의 축전 만화를 그리다 캐스팅 되었다고 하는데.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만화가로 살기 시작했나.
 
대학 졸업 후 바로 서울 공덕동에서 모바일 서비스 중 만화 관련된 일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인천에 살고 있는 저를 위해 김현석 부장님과 한성민 과장님 박형준 팀장님의 따뜻한 배려로
 퇴근하지 않고 그곳에서 먹고 자며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은 없어진 ‘만끽’ 이라는
만화 사이트 공모전에 친분이 두터운 백봉이 입상 후 만화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축전 삼아
 게시판에 만화를 올렸는데 그것을 본 편집장의 연락을 받고 『해피엔딩』이라는 만화로 정식으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만끽은 폐간했고 여전히 회사 일을 병행하고 있던 저는
 모두 퇴근한 어느 날 밤 학창시절 그렸던 연습장 만화인 『드라곤볼』과 『정열맨』을 재미삼아 웹에 옮겨 그렸습니다.
웃긴대학과 네이버 도전만화에 올린 것이 큰 호응을 얻으며 네이버 편집장의 연락을 받고
『정열맨』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바로 야후의 연락을 받고 열혈초등학교를
동시연재하게 되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모두 ‘개그’만화다. 연재작 모두 각기 개성이 넘치지만 어딘지 닮은 구석도 있는데.
작품 속 캐릭터의 행동양식에 일관성이 있다든가, 하는.
 
네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부분들이 있습니다.
 

 
‘개그 만화’는 시대에 따라 ‘엽기 만화’로도 불렸고, 지금은 ‘병맛 만화’라는 말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물론 각각의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병맛’만화가라는 지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혹시 작품 속에 그 이상의 은유가 있나.
 
은유를 하거나 내포된 뜻을 두기보다는 단순히 재미만을 목적으로 그립니다. 어떤 이야기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해석도 할 수 있고 가벼운 이야기에서도 큰 교훈을 얻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열혈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인터뷰’ 편 등을 통해 웹툰 유해매체 지정에 관한 입장을 내보이기도 했는데.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는 의도 혹은 태도가 내포되었다고 보는데.
 
‘신문’ 편을 말씀 하시는 것 같습니다. 임종을 앞둔 암환자가 라면을 먹고 죽는 것을 라면 때문에
환자가 죽었다고 보도하는 장면으로 마무리 됩니다. 몸에는 다소 해로울 수 있어도
라면이 암환자가 죽게 된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로 제 만화를 라면에 비유한 것 입니다.
 
 
 
『열혈초등학교』
『열혈초등학교』
 
 
 
피드백이란 것이 시차가 있고 비교적 적었던 잡지만화에 비해, 웹툰은 보다
 다양하고 즉각적인 의견을 구할 수 있다. 댓글 같이. 어느 정도는 신경을 쓰는 편인가?
 
『전학생은 외계인』에서 100회 이벤트로 독자 스토리 참여 이벤트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댓글에 영향을 받거나, 그 의견들이 만화에 반영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앞의 ‘병맛’ 만화들과 최근까지 연재했던 『귀귀 갤러리』『호러특급』은
 이전의 행보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데.
 
제가 평생하고 싶은 만화는 『귀귀 갤러리』나 『김치맨』 같은 에피소드 형식의 개그 만화입니다.
하지만 가끔 ‘호러특급’ 같은 만화를 그리는 것도 좋습니다.
 
 
그 중 『귀귀 갤러리』는 매 화 주제와 관련한 유화가 마지막에 등장한다.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여느 작업처럼 콘티를 짜고 만화를 그립니다. 그 후 그리고 싶은 장면을
 유화로 그려서 사진을 찍어 올립니다.
 
거기 나온 작품을 실제로 판매도 한다고 알고 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현재 『귀귀 갤러리』는 종료되었지만
제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좀 더 여유가 있을 때 평생을 두고 작업할 생각입니다.
 
 
작품이 어느 정도 쌓였으니 그림 전시를 할 법도 한데.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짧게는 10년 후 길게는 20년 후 쯤 전시회를 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귀귀 갤러리』에 실린 작품, '지옥도'. 해당 작품은 네이트에 연재한 『호러특급』'작은 마을' 편에도 살짝 등장한다
『귀귀 갤러리』에 실린 작품, ‘지옥도’. 해당 작품은 네이트에 연재한 『호러특급』’작은 마을’ 편에도 살짝 등장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호러특급』으로 넘어가서, 최근 다수의 호러물 사이에서도 단연 화제였다.
 
연재되기 한 달 전쯤 8부작으로 납량특집 그릴 생각 없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준비해둔 시나리오는 없었지만 평소 호러영화나 B급이라 불리는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해보겠다고 하고 구상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첫 화로 준비한 에피소드가 한 편 더 있는데
 뻔한 구성인 것 같아 오픈을 얼마 앞두고 빼게 되면서 ‘케리어’ 편을 급하게 새로 제작하여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가장 흡족했던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처음엔 스토리를 구상하며 제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에피소드는 ‘작은 마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정이 빡빡해 시간에 쫓겨 제작하다보니 생각했던 연출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처음 에피소드였던 ‘케리어’와 마지막 에피소드인 ‘장발장’ 역시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그나마 생각한대로 제작된 에피소드인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면 장기적으로 연재해보려고 계획 중입니다.
 
 
『호러특급』은 작화 부문에서도 다른 면을 보여주었는데, 독자들 사이에서는
‘귀귀 작가는 원래 작화실력이 출중하지만, 그렇게 하기 싫어 일부러 지금처럼 그린다’는 말도 있다.
 
그 작화가 내용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점차적으로 다듬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호러특급』중에서
『호러특급』중에서
 
 
 
작품 말미에 ‘재담미디어’ 로고가 붙어있다. 에이전시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가.
 
재담미디어의 황남용 대표는 저를 처음 데뷔시켰던 ‘만끽’의 편집장이자 대표였습니다.
계약관계에 묶여있거나 소속이거나 하는 사무적인 관계이기보다 의형제 같은 사이입니다.
재담미디어에서는 연재만화나 광고 만화 등을 주선해주거나 고료 협상, 해외 진출,
단행본 제작, 등의 매니지먼트 업무를 해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작품 외에 ‘이 작품이야 말로 제대로 병맛이지!’ 라고 생각하는 게 있나.
 
제대로 병맛 만화지! 라기 보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는 <스폰지 밥>입니다.
캐릭터, 배경, 연출, 개그 코드등 모든 부분에서 저에겐 완벽한 작품입니다.
 
 
혹시 글/그림 작가로 나누어 작업을 하게 된다면 어떨 것 같나.
 
그런 일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둘 다 제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취미로 피규어를 수집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전에 백봉 작가 인터뷰를 하며 함께 밴드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피규어를 모으는 것은 어릴 때부터 항상 좋아했습니다. 요즘에는 빈티지 피규어를 모으고 있습니다.
밴드는 어릴 때 였는데 백봉은 기타를 쳤고 전 드럼을 쳤습니다. 어릴 때라 돈이 없어서
막노동을 해서 상가지하에 연주실을 얻고 발품 팔아 계란판을 얻어 방음을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정말 재밌었던 추억입니다. 좋은 자작곡들도 꽤 있었습니다.
 
 
혹시 만화를 하지 않았다면 계속 했을까?
 
공덕동에서 함께 일했던 분들과 여전히 함께일 것 같습니다.
아니면 요리사나 동물원에서 일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요리하는 것과 동물들을 좋아합니다.
 
 
『김치맨』
『김치맨』
 
 
 
만화를 보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응원의 말씀에 정말 많은 힘을 얻습니다!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에이코믹스 만세!! 감사합니다!!!
 
 
 
 
by 임지희  ⓒ에이코믹스